제사의 의미와 종류

    1. 제사란?

제사를 지내는 방법과 제수를 진설 하는 방법은 각 지방,집안의 관습이나 풍속,전통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때문에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놔라 하지 마라'는 속담까지 생겨난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제사를 준비하고 진행 하는데 있어서 알아야 할 여러 예법들을 담아 놓았습니다. 물론 어떤 제사도 표준이라 할 수 는 없지만 이곳의 진설 과 제례 순서는 가장 일반적인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제사는 원시적인 미개사회에서부터 시작되어 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가 형성되고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면 어떤 형태로든 제사문화가 발달되었다. 미개사회나 문명사회는 형태만 다를 뿐이지 제사는 지속되었고 지금도 각기 다른 주술의 형태로 행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제사문화에 대한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 기록은 별다른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이 시기에는 신명을 받들어 복을 빌고자 하는 의례로서 자연숭배의 제사의식을 행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 들어와서야 자신의 조상을 제사 지내는 의례로 발전하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왕가에서 먼저 행해졌다.

삼국시대의 제사의례는 중국 문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과의 문화적 접촉으로 우리 고유만의 제사의례가 정착되어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제사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던 시기는 조선시대로 고려 말에 이르러 성리학의 도입과 더불어 '주자가례'에 따라 가묘를 설치하려는 운동이 사대부 사이에서 활발해지며 조상에 대한 제사가 사회적 관습으로 정착되어 갔다.

조선시대 예법의 표준은 왕실의 경우'국조오례의'였고, 민간의 경우에는 '가례'가 일반적인 예법서였다. 이러한 조선시대의 제사문화는 조선 말기까지 유교문화 속에서 사회전반에 걸쳐서 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어왔다.

 

    2. 제사의 종류

   1) 기제
기제는 기일 제사의 약칭으로 기일 즉, 고인이 돌아가신 날에 해마다 한번씩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기제는 오늘날의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로 인식되고 있다. 기제의 봉사대상은 과거에는[주자가례]에 따라 4대조까지였으나 요즘에는 2대조 까지 와 후손이 없는 3촌 이내의 존,비속에 한해서만 기제를 지낸다.

제사시간은 고인이 돌아 가신 날 자정부터 새벽 1시 사이 모두가 잠든 조용한 시간에 지냈었으나 요즘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그날 해가 진 뒤 어두워지면 아무 때나 적당한 시간에 지낸다.

제사는 제주의 집에서 지내는데, 고인의 장자나 장손이 제주로서 제사를 주재한다. 장자나 장손이 없을 때는 차자나 차손이 주관한다.
제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고인의 직계자손으로 하며 가까운 친척도 참석할 수 있다.

  2) 시제
시제는 원래 사시제 라고 부르던 것으로서 1년에 네 번즉, 춘하추동의 계절마다 고조 이하의 조상을 함께 제사하던 합동제사의 하나이다.
시제는 고전예법에서 정제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 제사였다.

고대에는 제사는 곧 시제를 말하는 것으로 제사의 으뜸이었으나 조선시대 이후 기제가 중시되면서 점차 퇴색되어 갔다. 또한 일년에 행하는 제사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현재는 보통 1년에 한번만 행하고 있다.시제는 조상을 모신 사당에서 거행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당이 협소할 경우에는
정침의 대청에서도 행해졌다 .

    3) 차례
차례는 간소한 약식제사로서 음력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 그리고 명절이나 조상의 생신 날에 지내며 보통 아침이나 낮에 지낸다.
[가례]를 비롯한 예서에는 차례라는 것은 없으나 우리 나라에서 관습적으로 민속명절에 조상에게 올리는 제사이다.차례는 기제를 지내는 조상에게 지낸다.
예를 들어 고조부모까지 4대를 봉사하는 가정에서는 고조부모,증조부모, 조부모, 그리고 돌아 가신 부모 등 여덟분의 조상이 대상이 됩니다.

차례는 명절날 아침에 각 가정에서 조상의 신주나 지방 또는 사진을 모시고 지낸다. 차례도 물론 기제를 지내는 장손의 집에서 지내는 것이 원칙이지만 지방이나 가문의 전통에 따라 한식이나 추석에는 산소에서 지내기도 한다.

 

    4) 묘제
묘제는 산소를 찾아가서 드리는 제사이다.
제찬은 기제와 마찬가지로 준비하고 토지 신에게도 따로 제수를 마련하여 제사를 지낸다.
고례에 의하면 제주를 비롯한 여러 참사자들이 검은 갓과 흰옷을 갖추고, 일찍 산소에 찾아가 제배하고, 산소를 둘러보면서 세 번 이상 잘 살피며 풀이 있으면 벌초하고 산소 앞을 깨끗하게 쓸고 난 후 산소의 왼쪽에 자리를 마련한다.

토지신 에게 먼저 제사를 지낸 뒤, 산소 앞에 정한 자리를 깔고, 제찬을 진설한다.
묘제는 그 장소가 산소이므로 그 진행차례도 집안에서 지내는 제사와 다르며 과거에는
산신에 대한 제사가 따로 있었다.

 

     5) 한식
한식은 청명 다음날로 동짓날로부터 계산해서 1-5일째 되는 날이다. 이 날은 예로부터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가는 것이 관습이었다.
한식이란 말은 옛날중국에서 비바람이 심해서 불을 때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는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제사에는 향사 대상자를 상징하는 신위를 설치하게 된다. 신위는 돌아가신 조상의 형체를 표상한 것이다. 신위에는 예로부터  시동,신주,위패,사판,소상,동상,초상화,지방 등이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사진도 사용되고 있다. 제사 중에는 이들 신위에 신이 깃들이는 것으로 믿어졌다.


     3.제사 용품

신주는 나무 위를 둥근 직육면체로 다듬어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 관계, 관작과 봉사자의 이름 등을 쓴 것으로 중국 고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위의 상징이다.
신주에 사용되는 나무는 중국의 하나라 때는 소나무를, 은나라 때는 잣나무를,주나라 부터는 밤나무를 사용하였다. 이들 나무는 각기 그 나라의 사당이 있던 지역의 토양에서 잘 자라던 나무를 사용한 것이라고 한다.
신주는 두 쪽의 나무판을 맞대어 제작하는데 앞판에는 한 가운데에 죽은 이의 친속,관작,시호 등을 쓰고 그 왼쪽에 봉사자의 친속과 이름을 쓴다.

뒤 판에는 한 가운데아래로 길게 홈을 파고 거기에 죽은 이의 관작과 성명을 쓴다. 뒤 판의 좌우에는 바람이 통하도록 둥글게 구멍을 뚫어 둔다. 신주는 이 두 판을 맞붙여 받침대에 꽂아 세워 나무 상자 속에 담아 보존한다.

신주는 장례식 때 묘지에서 제작되어 3년간 빈소에 모셨다가 담제를 지낸 후 사당에 모신다.교의는 신주나 위패를 봉안 하는 의자로서 제상이 높으면 교의도 높아야 하고 제상이 낮으면 교의도 낮아야 한다.요즈음에는 신위를 보통 제상 위에 봉안하고 있으므로 거의 사용하고 있지 않다.

위패는 그 형태가 신주와 비슷하지만 제작법은 간단하다. 단순히 한 토막의 직육면체 나무를 다듬어서 그 위에 죽은 이의 친속과 관작 등을 쓴 것으로 약식 신주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불교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다. 위판이라고도 하는 사판은 신주 형태의 넓적한 목판에 죽은 이의 관작이나 호등을 쓴 것으로 성균관,향교,서원,사우 등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방은 중국의 송나라 때부터 신주 대신에 일회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초기부터 사용되었다.
사당의 건설이나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도 웬만한 집이 아니면 신주를 모시지 못하고 그 대신 지방을 사용했다. 지방은 제사 직전에 만들었다가 제사를 마치면 소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제작이나 관리가 매우 간편하여 일반적으로 많이 쓰여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