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achim Muncheberg

 

 
스피트화이어 킬러 JG 26 의 전설의 에이스
 
이름 : 요하임 뮌헨버그
복무 : 서부전선 (북아프리카 포함) 동부전선 전선
격추기록 : 135 기 격추
 
 
 
뮌헨버그는 1918년 12월 18일 태어났다. 1936년 10월, 장차 독일 공군의 대에이스가 될 그는 처음엔 육군에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약 2년 후인 1938년, 드디어 루프트바페로 옮겼고, 조종사 훈련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 실전 배치된 곳은 JG 234 비행단의 제 1그루페였다. 1939년 10월 부터 뮌헨버그는 드디어 쉴라게터 비행단으로 유명한 JG 26의 제 3 그루페 대원으로서 본격적인 전투 조종사 역할을 해나가게 되었다. 뮌헨버그가 첫 격추 기록을 세운 것은 1939년 11월 17일로, 격추 제물은 영국 제 57 비행대의 블렌하임(Blenheim)기였다.
 
 
 
뮌헨버그의 Bf 109E 백색의 12번기....
칵크핏 아래 JG 27의 부대마크가 선명하군요
 
 
1940년 프랑스 침공당시, 뮌헨버그는 총 8기의 적기를 격추시키게 되는데, 이중 3기가 프랑스 공군기였고, 나머지 5기는 영국 항공기였다. 1940년 8월 22일, JG 26의 제 7 중대장으로 승진했고, 1940년 9월 14일에는 기사 십자 훈장을 수여 받는 영예를 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날, 뮌헨버그의 "백색 12번기" Bf 109E기는 자신의 20번째 격추를 기록하기도 했다.
 
1941년이 되면서, 그가 이끌고 있던 JG 26 제 7중대는 프랑스 북부지방의 본대에서 떨어져 나와, 지중해로 파견되었는데, 기지는 이탈리아의 남부 섬이며, 지중해의 요충지 시실리섬에 위치하게 된다.
 
이곳에서도 몰타섬 상공 등지에서 그의 격추 행진은 계속되었고, 43기까지 격추 스코어를 올려, 1941년 5월 7일, 오오크잎 달린 기사 십자 훈장을 수여 받았다. 1941년 6월 부터 7월까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뮌헨버그의 7 중대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로 옮겨, 임무를 수행해 나갔는데, 이곳에서 다시 5기의 적기를 더 격추해냈다.
 
 
 
시실리섬을 위문차 방문한 여자 영화 배우 캐롤 호엔(Karol Hoehn)양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뮌헨버그의 모습, 그는 "돌덩이 같이 표정 변화 없는 에이스"로도 유명한데, 여배우 앞에선 잎이 귀까지 찢어졌네요.
 
 
1941년 8월 뮌헨버그의 7중대는 다시 본대가 있는 프랑스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 후에도 그의 탁월한 전사로서의 재능은 계속되었다. 특히 뮌헨버그는 영국의 스피트화이어에게 매우 강한 면모를 보이는 스피트화이어 해결사였다. 1942년 6월까지 그는 35기의 스피트화이어를 격추해 낸것이다. 특히 1942년 4월 29일에는 폴란드 출신 영국공군의 에이스 마리안 피사렉(Marian Pisarek) 소령의 스피트화이어를 격추시켜 버린다.
 
1942년 7월, 뮌헨버그가 이끄는 7 중대는 다시 동부전선으로 옮겨가게 된다. (사실 이것이 징계였는지 포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의 중대가 JG 26의 별동대 처럼 여러 전선을 옮겨 다니며, 분전했던 것은 사실이다  ^.^) 동부전선에서는 JG 51의 본부 중대와 함께 임무 비행을 해나갔다.
 
드디어 9월 5일에는 자신의 100번째 격추를 성공시켰고, 그 4일 후 드디어 백엽검 기사 십자 훈장을 수여 받게 되었다. 동부전선에서 뮌헨버그는 자신의 84번째 격추부터 116번째 격추까지 총 33기의 격추를 달성해냈지만, 그 역시, 동부전선으로 옮겨 온 첫 4주 동안 두번이나 격추당하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역시 이당시 소련 공군의 잠재력이 발휘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백색 12번기에서 내리며, 동료들의 환영을 받는 뮈헨버그
 
1942년 10월 1일을 기해 뮌헨버그는 JG 77 전투 비행단의 단장으로 임명되면서, 다시 시실리섬과 튀니지 등지로 옮기며 북아프리카의 하늘아래서 비행임무를 계속했다. 여기서도 연합군기 총 24기를 격추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이기록들을 좀더 살펴보면, 1942년 11월 9일 스피트화이어 1기 격추, 11월 27일 다시 한기의 스피트화이어 추가 등등....
 
그러나 12월 10일 뮌헨버그도 역시 격추 당하는 경험을 다시 하게되는데, 영국의 P-40기와의 공중전 도중 피격을 당하고, 자신의 Bf 109G-2 기로 불시착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이런 몇번의 격추당하는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후에도 뮌헨버그의 스코어는 지속적으로 상승곡선을 탔고, 1942년 12월 12일, 2대의 P-40기, 그 이틀뒤에는 3기의 P-40기, 또 1943년 1월 22일에는 다시 2기의 P-40기 격추......
 
 
[사진] 에이스들은 개를 좋아한다?.... 일차대전 만프레드 리흐토펜도 자신의 비행대에서 개를 길렀다. 한번은 리흐토펜의 개가 자신의 주인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너무 기뻐 달려오다가 비행기의 프로펠러에 한쪽 귀가 잘려져 나간 적도 있다던데....
 
 이 당시, 북아프리카에는 폴란드인 에이스 스타니스라바 스칼스키(Stanislaw Skalski) 소령이 이끌던 영국 소속 폴란드 전투 비행단이 있었는데, 그들은 흔히 "스칼스키의 써커스 비행단"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비행대였다.
 
이들은 자신의 동료였고 뮌헨버그에게 전사한 피사렉의 원수를 갚기 위해 JG 77과 분전했고, 많은 독일기들을 격추시키기도 했다.
 
 
승승장구의 놀라운 격추행진을 계속하던 전설의 에이스 뮌헨버그에게도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는데, 때는 1943년 3월 스피트화이어 킬러라는 별명이 무색하게도, 스피트화이어 편대와의 공중전에서 자신의 마지막 격추로 한대의 스피트화이어를 격추시킨 후, 다른 연합군 전투기들의 공격으로 전사하고 만 것이다.
 
뮌헨버그는  총 500회가 넘는 임무 비행을 수행했으며, 통산 135기의 격추를 거두어냈다.
 
 
 
 
  
JG 26의 맹장... 요하임 뮌헨버그의 모습... 그는 스피트화이어 격추의 달인으로 유명했으며, 별동대와 같던 제 7중대를 이끌고 수많은 전선을 돌아다니며, 혁혁한 전과를 달성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