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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및 목적 blue00_next.gif검도의 역사 blue00_next.gif검술과 검도
blue00_next.gif검도와 거합도 blue00_next.gif검도의 기술 blue00_next.gif죽도와 칼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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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부 제정거합 blue00_next.gif1970년대 검도부 blue00_next.gif초등부검도수련 blue00_next.gif한일학생부검도

 

 
 

 

 

 

 

 

 

 

 

 

 

 

 

 

 

 

 

 

 

고대 원시인의 무기로서 존재했던 칼은 지극히 유치한 무기며 단순한 외적침략의 방어 수렵등의 사용으로 발달되어 오다가 형태가 잦추어져 서양은 팬싱,동양은 검도로 발전되었다고 보겠다.

검술이 도술 혹은 격검이라 말로 사용되어 오다가 검도란 말을 사용한 나라가 일본이고  또한 검도를 일본이 주도하기에 이르렀으며 우리의 경우 검술이 형태를 갖춘 무술로 존재 하게된 것은 삼국시대부터가 명백하다고 할 것이다
.후한시대(AD 25-220) 반고가 저술한 한서 전 백권중 제삼십권인 한서 예문지속에 병서부가 았는데 이것은 당시 존재한 병서를 분류하고 있으며 이중 병기교는 무술을 말하는데 그 대부분은 사법(궁술)에 관한 책에서 열거하고 있지만 사법을 제외한 무술로서 수박육편,검도 삼십오편 포저자 의법사편의 책이 기록되어 있고 다시 축국이십오편의 책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써 검도란 단어의 유래는 지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보겠다.

검과 도의 내력을 좀더 고찰해 본다면 인류이 존재가 생성하던 선사시대 즉 구석기시대(30000년전)에 이어 신석기시대(약 4-5천년전으로 BC 2000-3000년)에 이미 석촉 석도 석창등 타제석기와 마제석기가 등장 하였고 이어 청동기시대를 거치면서 청동검과 같은 청동제무기가 사용되면서부터 약탈이 용이하게 자행되는 가운데 씨족과 씨족간의 정복,약탈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것이 유치한 대로 검술의 원천에 해당하는 시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반원형의 석도와 석부는  농기구로서 농사기술의 진보를 말한다고 보겠다.
한국의 청동기는 6-7세기경으로 보이며 이시기에 중국으로부터 농사기술과 함께 벼가 전래되어 우리나라는 농경사회로 전환되었으며 그 결과 부족의 형태가 갖추어지니 고구려 ,부여등이 이때의 우리나라 부족국가들이다.
우리나라에 청동기가 전래될 때 철기가 중국에 발전되어 있었다.

 

 

 

 

 

 

 

 

 

  ◁ 한·일(韓日) 고대사의 열쇠로 알려진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 칠지도(七支刀) ▷

 

일본검도 소립원신부서의 첫페이지에 6세기 조선에서 출토된 금장환두태도가 실려 있고 고려시대의 한단차가 일본에 귀화해서 그 칼을 제작했다는 사실과 BC27년 신라왕자 천일창이 와금과 소도를 가지고 일본으로 귀화하다 라는 구절이 일본서기에서 인용한 일본검도사 첫머리에 있다.
이 사실은 일본서기외에 고어십귀 신선성씨록 과마풍사기 석일본기등의 기록을 종합해 유추한 것으로 검술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허다한 고문서에 의하면 한국이 일본에 검고를 전파시킨 사실이 확실하고 또한 일본책자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칼은 인류 발생시부터 인간의 유용한 필수품이었고 도와 검의 구별을  한쪽만 날이 난 것을 도라고 하고 양쪽에 날이 난 것을 검이라 하지만  양자구분없이 혼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장검은 그형이 월도와 같은 것이므로 도라고 함이 옮으나 검이라 하였고 또 양손에 환도 하나씩을 가지고 하는 검술을 환도라 하지 않고 쌍검이라 하였으며 우리의 검술인 본국검도 그 형에 부합되게 부르자면 본국도가 타당하다 .

도와 검을 좀더 구체적으로 고찰해 보면 타제마제의 석검 석도 석창 석부등 많은 석기가 함경북도 경흥 성진 부령 경성으로부터 평한남도 황해도 해주 안악 강원도 양양 춘천 경기도 안성 충청남도 부여 경상북도 안동 경주 및 경상남도 밀양등지에서 출토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출토된 이 유물들의 형이 동일함은 한반도 내의 민족이 동일동족이었다는 증거이며 북쪽으로 인접한 간도와 두만강 서쪽해안 지방에서도 같은 종류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는 점에 비추어 우리조상들의 삶의 영역이 비단 한반도에만 국한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검도에 관한 문서가 희소하여 정확히 유래를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에도 격검과 같은 검술이 행해진 바 있으나 오늘날의 검도는 일본에서 유입되었다.

 

고종실록 건양원년(1895년5월23일)조를 보아 1896년부터 경무청이 치안의 필요에서 검도를 경찰관교습과목으로 채택하면서 이것이 우리나라시초가 된다.

1904년9월27일 장교교육기관인 육군연성학교에서 육군의 교육체계를 세우는 한편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전술과 사격과 체조과 검술과를 각각 숙련하도록 교육시행케하여 검도가 군경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최초의 경기는 1908년3월28일 내각원유회주체로 비원에서 거행된 경시청의 한일양국 경찰관의 격검시합이다.

1876년(명치6년)미지마에 의해 현대적인 검술이 고안되었다.

일반사회와 학교간에 널리 보급되었던 검도는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군국주의적 색체를 일소하기 위해 금지시켰으나 최근여러나라에서 실시하여 국제경기로 등장하게되었다.

우리나라는 1919년5월 오성학교에서 검도시설을 갖추고 일반청년부원을 모집하여 지도하였으며 1921년11월19일강낙원씨가 중심이 되어 조선무도관을 설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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